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4 셔먼 (문단 편집) === 관련 루머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M4 셔먼/pattonm4.png|width=100%]]}}} || >'''밀워키 저널 [[1945년]] [[3월 27일]]자 기사 '전문가 패튼 장군이 미국 전차를 강력히 변호하다' ''' >'''나치 전차를 상대로 2대 1 전적을 거두어''' >패튼 장군, M4가 타이거보다 기동성이 우수해 더욱 유리하다고 밝혀 >최근 또다시 놀라운 돌파작전을 성공시킨 3군의 사령관인 [[조지 S. 패튼]] 중장이 지난 화요일 미국의 M4 전차를 강력히 변호하고 나섰다. M4는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아왔던 전차이다. 패튼 장군은 3군 전차가 독일 전차를 상대로 약 2대 1의 전적을 거두었으며, 독일 전차의 상당수가 중전차인 [[티거 전차|타이거]]와 [[판터 전차|팬서 전차]]였다고 말했다. 패튼 장군의 입장은 그가 3월 19일 합동참모차장 토머스 T. 핸디 중장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나 있다. 패튼 장군은 편지에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고의적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자들이 전선에서 귀국하여 미군 병사가 가지고 싸우는 장비에 대해 흠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나는 1942년 11월 7일부터 일선 전투부대의 지휘를 맡아 온 몸이므로 여러 가지 군 장비에 대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일 것입니다."고 적었다. > >'''M4 전차의 기동성이 더욱 뛰어나''' >"M5(경전차, 스튜어트)나 M4(중형 전차, 셔먼)가 본국에서는 독일의 6호 전차, 즉 팬서형 전차와 타이거형 전차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3군이 운용되기 시작한 1944년 8월 1일 이래로 손실한 전차의 수는 총 1,136대이며, 같은 기간 동안 3군이 격파한 독일군 전차는 총 2,287대입니다. 격파된 적 전차 중 808대는 타이거 혹은 팬서 전차였으며, 아군 전차 중 851대가 M4였습니다. 이 숫자만 가지고도 우리 전차가 성능적으로 열세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또 하나 덧붙이고자 합니다. 이 기간 동안 3군은 계속 공세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전차 손실의 70% 이상이 적 전차가 아니라 엄폐한 대전차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반면 적 전차는 대부분이 아군 전차에 의해 격파되었습니다. 두터운 장갑을 갖춘 타이거 전차를 거리 한 쪽 끝에 놓고 반대쪽의 M4 전차와 사격전을 벌이게 한다면 M4가 버텨내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M4는 기동성이 우수한 덕에 대부분 느리고 굼뜬 타이거 전차를 손쉽게 우회할 수 있고, 정면에서 사격을 주고받는 대신 취약한 후방을 노릴 수가 있습니다." > >'''타이거의 주행가능 거리는 짧아''' >"내가 보기에 독일군은 무겁고 둔한 타이거의 등장과 함께 기갑전 능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차는 지나치게 무거운 데다가 주행가능 거리까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군이 전차가 아니라 숫제 포대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이 전차를 아군 전차를 막는 데 쓰게 되는 데 비해, 아군 전차는 전차의 올바른 운용방법대로 항상 공세에서 적 보병을 제압하는 데 투입되며 대부분 성공합니다. 만일 3군을 따라 프랑스를 가로질러 진격한 기갑사단이 타이거 전차로 무장하고 있었다면, 3군이 모젤 강에 다다랐을 때쯤에는 행군간 손실률이 100%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수명이 긴 아군 전차의 행군간 손실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군의 모든 전차를 증기선에 실어 수송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며, 여기에서 40톤과 70톤의 차이는 아주 분명한 것입니다. 70톤짜리 전차가 투입되었다면 우리가 중형전차를 상륙정에 실어 해안에 내려놓은 것처럼 옮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군의 거의 모든 전차가 그랬던 것처럼 코탕탱 반도부터 라인강까지 주행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기계적 내구성과 정비 용이성에 있어 아군 전차는 전역의 어느 전차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합니다. 또한 독일 전차에는 없는 기계식 포탑구동장치와 포구안정장치라는 장점이 아군 전차가 적 전차를 격파하는 데 막대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 >셔먼에 대한 패튼의 생각 (월드 오브 탱크/워플레인 커뮤니티) - 작성자 KrasnayaZvezda[[http://cafe.naver.com/wotat/737546|#]] >'그 '독일군 전차 한 대와 미군 전차 다섯 대의 교전비'는 누가 지어낸 건지는 몰라도 전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미군이 아니라 영국군이 운용한 셔먼 때문에 생긴 말 같고, 그나마도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군은 1944년 캉 지구에서 독일군과 교전하면서 다수의 셔먼을 손실한 적이 있지요. 60년대와 70년대의 초기 전차 관련 서적, 특히 미군 전차에 다룬 서적의 거의 대부분은 영국인 저자가 저술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미국에서 쓴 전차 관련 서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다수의 셔먼 관련 자료가 영국측 자료였고요. 그리고 영국군은 노르망디에서 실제로 많은 셔먼을 잃었고요. 이는 전차 자체 문제가 아니라 전술적인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너무 긴 내용이라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영국군의 셔먼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미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미군 전차전력이 노르망디에서 독일군 전차를 만난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상륙 후 첫 달의 전투는 대부분 7군단이 셰르부르로 진격하면서 코탕탱 반도에서 벌인 것이었는데, 코탕탱 반도의 독일군 기갑전력은 노획한 프랑스제 전차로 편성된 2개 대대 뿐이라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전차전 자체도 별로 없었고요. 7월이 되면 미군이 보카주 지역으로 진입하면서 2기갑사단과 3기갑사단이 월말에 대규모 돌파작전인 코브라 작전을 개시하게 되는데, 보카주 지역도 전차전에는 그리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독일군도 전차전력이 있기는 했습니다. 기갑교도사단과 SS 2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였지요. '다스 라이히'는 지형 때문에 전차전 자체를 제대로 벌여보지 못했습니다. 한편 기갑교도사단은 7월 중순 큰 공세작전을 하나 시도하기는 했는데 미군에게 박살이 나고 맙니다.어쨌든 두 사단 모두 미군 전차하고는 거의 붙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미군 보병과 구축전차를 상대해야 했고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요. 그리고 8월에는 돌파작전을 진행해 미군 전차가 브르타뉴를 지나 프랑스를 가로질러 파리까지 나는 듯이 달려갔습니다. 간헐적으로 전차간 교전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규모는 매우 적었고요. >미군이 처음으로 독일군 전차전력과 대규모 전차전을 벌인 곳은 1944년 9월 로렌의 아라쿠르에서였습니다. 미군 4기갑사단이 독일군 기갑여단 몇 개와 맞붙었는데, 그야말로 미군이 압도적으로 깔아뭉개 버렸습니다. 패튼의 3군이 로렌에 있던 독일군 기갑여단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지요. 4기갑사단은 이 시기쯤 되면 훈련이 잘 되고 풍부한 경험도 축적한 상태였던 반면에, 독일군 기갑여단은 신품 판터 전차를 대량으로 보유하고는 있었기는 해도 부대 자체가 새로 편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경험 수준이 들쭉날쭉했으며 실제로 전투성과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가 2차대전 중 미 육군이 비교적 좁은 지역에 상당한 수의 전차를 투입해 벌인 전차전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 >- [[http://cafe.naver.com/wotat/736079|Steven J. Zaloga]] >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전차는 성능이 형편없었고 압도적인 독일 전차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 >- 영화 [[퓨리]]에서 나오는 서문.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패튼의 이 자신감은 아라쿠르 전투에서 비롯된다. 독일군의 전차가 86대 격파 및 114대 중파/유기된데에 비해 4기갑사단의 셔먼은 25대 격파에 7대의 헬켓이 격파된 것 뿐이다. 약 6대 1의 교환비. 그리고 육군항공대의 지원은 막바지에나 있었으며 [[http://blog.naver.com/96jacob/220195447795|전쟁기간동안 육군항공대의 대전차임무 실적은 미미하다.]] 당시 4기갑사단의 선봉인 A전투단의 셔먼은 죄다 75mm였던 만큼 셔먼의 장갑과 화력이 판터에 비해 부족하다는건 사실이나, 그 열세에서도 패튼 휘하의 4 기갑사단이 안개낀 환경과 셔먼의 기동력을 이용해 판터를 우회해서 격파한 것이다. 이러니 패튼이 셔먼의 기동력을 강조한 것. 그러나 패튼의 위 연설 또한 100% 진실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당시 미군이 노르망디 이후 서부전선 전역에서 실제 6호 전차와 교전한 횟수는 3번에 불가했다. 당시 미군은 독일 전차를 전부 타이거라고 불러서 교차검증이 어려운데다 실제로 미군이 주장하는 많은 수의 티거는 사실 4호 전차나 여타 돌격포나 판터였다. 그리고 아라쿠르 전투같이 극소수의 제한된 전투나 교전을 제외하고 독일 전차가 우세한 경우가 더 많았다. 애초에 독일이 방어측이라 유리한데다, 셔먼은 티거나 판터에 비해 전투력이 뒤떨어졌고 4호 전차 상대로는 우세했지만 완전히 우세를 점하진 못했다. 연합군과 독일의 전차 교환비는 종전당시 3~3.3:1이었다. 패튼의 말에는 과장이 들어갔다는 말. 물론 지휘관이 아군의 사기를 위해 전과를 부풀리는 경우는 어느 국가나 흔했기 때문에 패튼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 단지, 현실은 패튼의 말과는 조금 다를 뿐. 게다가 패튼은 일선 장병의 시선으로 전차를 보는게 아니라 지휘관의 입장에서 보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흔히 '[[퓨리(영화)|셔먼 5대가 모여야 티거 1대를 상대할 수 있다]]'거나 하는 말이 유명하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이 말은 미 제 3기갑사단 야전 정비대대 출신이었던 벨튼 쿠퍼가 자신이 전투에서 손상된 셔먼을 수리하며 개인적으로 분석한 것과 전차병의 증언을 바탕으로 판터의 공방 성능을 평가하면서 셔먼의 5배 정도 된다고 했던 것이 와전된 것이다. 벨튼 쿠퍼는 슈퍼 퍼싱의 화력 시험과 장갑 강화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전장 최일선에서 박살난 전차를 직접 피격 부위와 손상 정도를 파악하고 수리 및 재정비해 전장으로 돌려보내던 일을 하던 인물이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낫겠지만 그가 소속된 부대는 600%에 육박하는 손상률과 200%에 달하는 완전 손실을 기록한 부대라 [[확증편향|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으며,[* 격파된 전차에 탑승했던 전차병의 증언은 당연히 부정적이었고 이는 쿠퍼의 셔먼에 대한 시각을 부정적으로 돌려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셔먼과 T-34의 격파된 차량당 사망률 비교 문단에서도 나오지만 '''격파된 전차의 전차병이 증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셔먼의 여유있는 설계 덕분에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피격된 T-34에 갇혔다가 유폭으로 사망한 병사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당연히 증언을 하지 못했다]].] 위에 나온 것처럼 실제로 싸우던 전차병조차도 적 전차를 싸잡아 티거로 부르던 시절인데 정비부대에 있으면서 주워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자료를 보자면 영국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동해 8월 12일까지 미군과 독일군간의 전차간 교전을 분석한 [[http://forum.worldoftanks.com/index.php?/topic/91572-us-guns-german-armor-pt-2/|자료]]에 따르면 미군측 전차병력이 독일측의 2.2배 이상인 경우는 항상 승리하는 결과가 나왔다. 독일군의 경우는 미군에 대해 1.5배의 병력을 동원한 경우 승리했다. >셔먼이 [[6호 전차 티거]]를 만났을 때 후퇴해도 죄를 묻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원래 2차대전 당시의 미국의 전차는 티거든 판터, 심지어 [[마우스 전차|마우스]] [[초중전차]]를 만났을 때만이 아니라 [[3호 전차]]나 [[4호 전차]] 같은 셔먼보다 가벼운 전차를 상대로도 원칙적으로 전차는 싸우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미군의 군사교리에 의하면 전차의 상대는 [[M10 GMC]]같은 [[대전차 자주포]]지 전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전차 자주포나 대전차포 부대가 준비를 끝내면 전차는 후퇴해도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미군은 전차 자체의 대전차 전투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고, 이는 전쟁 초창기 [[M3 리]]의 차체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억지로라도 75mm 포를 달아 적 전차와 싸울 능력을 부여하는데 집착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증거로, 미군은 1942년에 이미 [[M4A1E6|M4A1에 76mm 포를 시험 장착]]할 정도였다. 최초로 장착한 버전인 M4A1(76)W가 전장에 배치되지 않은 것은 대전차전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 결과 포탑이 지나치게 비좁아서 전투 불합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M26 퍼싱이 더 일찍 배치되지 않았던 이유와 동일하다. 당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ref/FM/PDFs/FM17-10.PDF|미군 교범]]을 봐도 일반 전차 역시 최우선적으로 '''적의 전차를 먼저 제압할 것'''[* Chap. 5, Section 2, Technique of Employment, h. Employment in combat, (2) Targets -Tanks engage targets in the order of importance to themselves and their unit. The order of importance is: (a) '''Hostile tanks''', the weapons of which are effective against our own tanks. (FM 17-10, Mar. 1942, p.203)]을 명시하고 있다. 보병 지원이 중요하다고 해서 대전차 전투를 등한시한 게 아니라, 전차를 잡는 것 자체가 보병 지원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차를 뚫어서 파괴시키는 것이 유일한 전차를 제압하고 상대하는 방법인 것도 아니었다. 탱크의 궤도를 박살내거나 주포를 날려버리거나 전차병을 기절시키거나 탱크의 광학을 망가뜨린다던가 하는 방법 아니면 복합적인 방법으로 탱크를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워 썬더 등의 전차 게임을 해본 사람을 알겠지만, 전차의 주포 및 궤도, 내부의 엔진 등이 박살나면 전차는 기동성 또는 공격력을 완전히 잃어 고정 표적이 된다.] 해당 교범엔 대전차 자주포(Tank Destroyers)의 보조 역시 명시되어있는데, 대규모 기갑전투가 벌어지면 아군 전차가 전방에서 몸빵을 하는 사이 대전차 자주포가 적 전차를 보다 우수한 화력과 낮은 차체, 오픈탑의 넓은 시야를 살려서 두들겨 패며 전차와 함께 싸운다는 것이지 아군 전차가 대전차 자주포 뒤로 도망가진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 즉 1943년까지는 이런 교리가 아주 잘 먹혀서 [[횃불 작전]]과 [[시칠리아 전투]]에서 미군측 셔먼은 3호 전차, 4호 전차나 엘레판트[* 1944년 2월에는 M10 울버린이 혼자 측면으로 돌아가 엘레판트를 격파한 사례가 있다.] 등을 때려잡으며 대활약을 했다. 그 뒤 독일이 수세로 틀어박히고 [[5호 전차 판터]]나 [[티거 2]]를 본격적으로 투입하면서 피해가 발생했을 뿐... 다만 이 대전차 자주포 운용은 2차대전 이후 실패로 평가받는데 이유는 전차가 몸빵하는 동안 대전차 자주포가 적 전차를 잡느니 그냥 전차에 강력한 포를 장착하는 것이 낫다는 점과 대전차 자주포의 쓰임이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2차 대전 당시 실제 전장에서는 전차가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멋대로 후퇴하면 전시 적전(敵前)도주죄로 간주되는데 전시 적전도주는 당시 거의 무조건 [[사형]]이었다. M4에 '셔먼'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미군이 아닌 영국군으로, [[스튜어트 전차|M3 경전차]]에 [[스튜어트]], [[M3 리|M3 중형전차]]에 [[로버트 E. 리|리]]/[[율리시스 S. 그랜트|그랜트]]의 이름을 붙인 것도 영국군이다. 결국 미제 전차에 미국의 과거 유명한 육군 장군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은 영국이 만들어준 셈. 셔먼 이후, 미군이 자국산 전차에 붙인 이름은 [[M26 퍼싱]](1차대전 당시 미군 원정군 사령관), [[M46 패튼|M46]], [[M47 패튼|47]], [[M48|48]], [[M60 패튼|60]] [[조지 S. 패튼|패튼]], M41 [[월튼 워커|워커]] "불독"(2차대전 중 패튼 휘하의 군단장, 한국전쟁 초기 미 8군사령관), [[M551 셰리든]](남북전쟁 북군 기병대장군), [[M1 에이브람스]](2차대전 당시 발지 전투에서 활약), M2/3 [[브래들리]](패튼의 친구 겸 상관, 나중에 미육군 참모총장, M2/3 브래들리는 장갑차긴 하지만...) 등 미 육군사에 이름을 날린 장군이다. 미국 남부 출신의 전차병이 이 전차에 탑승하기를 거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윌리엄 테쿰세 셔먼|셔먼]]은 남부 사람들이 증오하는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화는 거짓말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M4라고만 불렀고 그 어디에도 미국 남부 사람이 타기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없었다. 그리고 셔먼이나 스튜어드라는 명칭은 영국에서 쓰던 것이었다. 이 일화는 벨튼쿠퍼의 책 데스트렙에서 인용된 오류였다. 에이브람스 장군의 경우 당장 대전차용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75mm 셔먼만을 이끌고 독일 전차 400대 이상을 격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판터 전차를 상대로 8:3.1의 교환비를 보여주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괜히 [[M1 에이브람스|현대 미합중국 주력전차의 이름]]으로 붙여진게 아니다. 그외에도 가끔씩 판터를 잡아내거나 한국전쟁에 투입된 셔먼이 [[T-34-85]]를 여럿 격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